안디옥, 마흔 번 넘게 흔들린 도시
제자들이 처음 그리스도인이라 불린 곳. 그 도시가 지난 2000년 동안 겪은 지진을 따라가 봅니다.
아래로 내리면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흩어진 사람들이 안디옥에 이르다
스데반이 순교한 뒤 일어난 박해로 예루살렘의 성도들이 흩어졌습니다. 그 가운데 몇 사람이 북쪽으로 500km 가까이 올라가 안디옥에 이르렀고, 유대인이 아닌 헬라인에게도 주 예수를 전했습니다(행 11:19-21).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사도행전 11:26
세상으로 나간 첫 선교의 출발지
안디옥 교회는 금식하며 기도하던 중에 성령의 말씀을 따라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워 보냈습니다. 두 사람은 항구 실루기아에서 배를 타고 구브로로 건너갔습니다(행 13:1-4). 복음이 지중해 세계로 나간 첫걸음이 이 도시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사도행전 13:3
2000년 동안 마흔 번 넘게
미국 해양대기청(NOAA)의 큰 지진 기록에는 안디옥이라는 이름이 붙은 지진이 41번 나옵니다. 여기에 2023년의 대지진이 더해집니다. 사망자 수가 숫자로 남은 것이 14번이고, 그 가운데 열한 번은 2만 명이 넘었습니다. 다만 여러 도시가 함께 흔들린 기록은 그 숫자에 다른 도시의 피해도 들어 있습니다.
안디옥은 아프리카판과 아라비아판, 아나톨리아판이 만나는 단층 가까이에 있습니다. 화면 아래 숫자가 기록된 지진을 셉니다.
황제가 머물던 겨울
로마 황제 트라야누스는 파르티아 원정 중에 안디옥에서 겨울을 나고 있었습니다. 역사가 카시우스 디오는 큰 굉음이 먼저 울리고 땅이 크게 흔들렸으며, 사람들이 무너진 건물에 깔리고 여진이 며칠 동안 이어졌다고 적었습니다.
황제는 가벼운 상처만 입고 빠져나왔지만, 그해의 집정관 마르쿠스 페도 베르길리아누스는 목숨을 잃었습니다. 훗날 황제가 된 하드리아누스도 이 지진을 겪었습니다.
규모와 사망자는 오늘날 학자들의 추정입니다.
승천 축일 무렵, 불의 비
오전에 땅이 흔들렸고, 무너진 도시에 불이 붙어 바람을 타고 며칠 동안 탔습니다. 안디옥 출신 역사가 요한네스 말랄라스는 이를 「불의 비」라고 적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승천 축일을 맞아 시골에서 올라온 사람들이 많아 피해가 더 컸으리라는 견해도 있습니다.
안디옥 총대주교 에우프라시우스도 이때 숨졌습니다. 2년 뒤인 528년 11월에 또 큰 지진이 났습니다.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때 다시 세워진 도시는 「테오폴리스(하나님의 도성)」라는 새 이름을 얻었습니다.
새벽 4시 17분, 그리고 오후 1시 24분
튀르키예 남부에서 새벽에 규모 7.8, 같은 날 오후에 규모 7.5의 지진이 잇따라 났습니다(USGS). 진앙에서 100km 넘게 떨어진 안타키아, 곧 옛 안디옥은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곳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튀르키예와 시리아를 합쳐 5만 9천 명이 넘게 숨졌습니다. 안타키아의 성 바울 교회와 오래된 하비브 네자르 모스크도 무너졌고, 2월 20일에는 규모 6.3의 지진이 다시 이 도시를 흔들었습니다.
흔들리지 않는 나라
안디옥은 무너지고 다시 서기를 거듭했습니다. 그러나 그 도시에서 보낸 복음은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바나바와 사울이 떠난 그날부터 복음은 지중해를 건너 세상 끝까지 이르렀고, 오늘 우리에게까지 왔습니다.
이 또 한 번이라 하심은 진동하지 아니하는 것을 영존하게 하기 위하여 진동할 것들 곧 만드신 것들이 변동될 것을 나타내심이라 그러므로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히브리서 12:2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