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조별로 보기 · 난리와 전쟁

난리와 난리 소문, 전쟁 2000년

점 하나가 이 페이지의 기록 하나입니다(55건). 점이 클수록 사망자 추정의 위쪽 값이 큽니다. 점을 누르면 그 기록으로 갑니다.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마태복음 24:6-7

1세기 유대 전쟁부터 오늘의 전쟁까지, 역사 연구와 국제기구 자료로 사망자 규모가 확인되는 큰 전쟁과 무력 충돌을 모았습니다. 모두 55건이며, 사망자는 숫자 하나가 아니라 학자들의 추정 범위로 적었습니다.

가장 큰 피해를 낸 10번

  1. 1939~1945년제2차 세계대전7,000만~8,500만 명 · 유럽·아시아·태평양·북아프리카
  2. 1850~1864년태평천국의 난2,000만~7,000만 명 · 중국 남부·양쯔강 유역
  3. 1206~1368년몽골의 정복 전쟁 (고려 침입 포함)2,000만~6,000만 명 · 유라시아 전역 (중국·중앙아시아·페르시아·러시아·고려 등)
  4. 755~763년안사의 난 (안녹산·사사명의 난)최대 3,600만 명(추정) · 중국 북부 (당나라)
  5. 184~280년중국 삼국 시대의 전란 (황건적의 난~진의 통일)최대 3,400만 명(추정) · 중국
  6. 1618~1683년명–청 교체기 전쟁최대 2,500만 명(추정) · 중국·만주
  7. 1914~1918년제1차 세계대전1,500만~2,200만 명 · 유럽·중동·아프리카·태평양
  8. 1937~1945년중일 전쟁1,400만~2,200만 명 · 중국
  9. 1370~1405년티무르의 정복 전쟁700만~1,700만 명 · 중앙아시아·페르시아·인도 북부·아나톨리아
  10. 1917~1922년러시아 내전700만~1,000만 명 · 옛 러시아 제국

옛 전쟁의 사망자는 남은 기록과 인구 추정에 기댄 것이라 학자마다 크게 다릅니다. 전쟁이 부른 기근과 질병을 넣는지에 따라서도 숫자가 갈립니다. 진행 중인 전쟁은 그 숫자를 언제 누가 발표했는지 함께 적었습니다. 인구가 늘어난 만큼 근대 전쟁의 숫자가 커진다는 점도 함께 보아야 합니다.

시대별 기록

1세기 1건

66~73년유대 (오늘날 이스라엘·팔레스타인)논쟁 있음

제1차 유대–로마 전쟁 (예루살렘 함락, 70년)

최대 110만 명(추정)

66년 유대 지방에서 로마의 통치에 맞선 봉기가 일어나 로마군과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70년 티투스가 이끈 로마군이 예루살렘을 포위해 함락시키고 성전을 불태웠습니다. 전쟁은 73년 무렵 마사다 요새가 무너지면서 끝났습니다.

숫자에 대하여: 최댓값 110만 명은 당시 역사가 요세푸스가 예루살렘 포위 때 죽었다고 적은 숫자입니다(갈릴리 등 다른 지역 사망은 따로 적음). 현대 학자들은 요세푸스의 숫자가 부풀려졌다고 보는 경우가 많고, 유대 인구의 상당 부분(4분의 1 정도일 수 있음)이 죽었다는 정도로만 말합니다. 믿을 만한 하한 추산이 없어 deaths_low는 비워 두었습니다. 포로로 팔려 간 9만 7천 명이라는 요세푸스의 숫자는 여러 학자가 받아들입니다.

출처: First Jewish–Roman War (Wikipedia) · Siege of Jerusalem (70 CE) (Wikipedia) · List of wars by death toll (Wikipedia)

2세기 2건

132~136년유대 (오늘날 이스라엘·팔레스타인)논쟁 있음

바르 코크바 항쟁

최대 58만 명(추정)

132년 시몬 바르 코크바가 이끈 유대인들이 로마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통치에 맞서 다시 일어났습니다. 로마는 대군을 보내 135년 베타르 요새를 함락시키고 항쟁을 진압했습니다. 그 뒤 유대 지방의 유대인 공동체는 크게 무너지고 많은 사람이 노예로 팔리거나 흩어졌습니다.

숫자에 대하여: 58만 명은 로마 역사가 카시우스 디오가 전투에서 죽었다고 적은 숫자로, 굶주림·질병·화재로 죽은 사람은 셀 수 없었다고 덧붙였습니다. 고대 사료의 숫자라 그대로 믿기 어렵다는 지적이 있어 하한은 비워 두었습니다. 위키백과 목록은 66–135년 유대–로마 전쟁 전체를 35만–140만 명으로 묶어 적습니다.

출처: Bar Kokhba revolt (Wikipedia) · Cassius Dio, Roman History 69.14 (LacusCurtius, 영어 번역) · List of wars by death toll (Wikipedia)

184~280년중국논쟁 있음

중국 삼국 시대의 전란 (황건적의 난~진의 통일)

최대 3,400만 명(추정)

184년 황건적의 난으로 후한 왕조가 흔들리면서 군벌들의 싸움이 이어졌고, 위·촉·오 세 나라가 맞서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 시기 전쟁과 기근, 역병으로 중국 인구가 크게 줄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280년 진(晉)나라가 오나라를 무너뜨리면서 다시 통일되었습니다.

숫자에 대하여: 3,400만 명은 후한 말 인구 조사(약 5,600만 명)와 삼국 통일 무렵 인구 조사 사이의 차이를 사망으로 본 추산으로, 위키백과 목록에 실려 있습니다. 전란으로 호적 행정이 무너져 세금 장부에서 빠진 사람이 많았기 때문에 실제 사망자는 훨씬 적었을 것이라는 반론이 큽니다. 전쟁·기근·역병을 모두 포함한 숫자입니다.

출처: Three Kingdoms (Wikipedia) · List of wars by death toll (Wikipedia)

6세기 1건

598~614년한반도 북부·요동논쟁 있음

고구려–수 전쟁 (살수대첩 612년)

최대 30만 명(추정)

중국을 통일한 수나라는 598년부터 614년까지 여러 차례 고구려를 침공했습니다. 612년 을지문덕이 이끈 고구려군이 살수(청천강으로 보는 견해가 많음)에서 수나라 군대를 크게 무찔렀습니다. 거듭된 원정 실패는 수나라가 일찍 무너지는 원인 가운데 하나가 되었습니다.

숫자에 대하여: 위키백과 목록은 약 30만 명으로 적습니다. 주로 수나라 군대의 손실(612년 원정군의 대패 등)을 『수서』 같은 중국 사서의 병력 숫자에서 끌어낸 것이며, 고구려 쪽 군민 피해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사서의 병력 숫자 자체가 과장되었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출처: Goguryeo–Sui War (Wikipedia) · List of wars by death toll (Wikipedia)

8세기 1건

755~763년중국 북부 (당나라)논쟁 있음

안사의 난 (안녹산·사사명의 난)

최대 3,600만 명(추정)

755년 당나라의 절도사 안녹산이 반란을 일으켜 낙양과 장안을 차지했습니다. 반란은 사사명 부자에게 이어지며 763년까지 계속되었고, 당나라는 이 난을 겪은 뒤 크게 약해졌습니다. 반란 뒤 인구 조사 숫자가 급감해 '역사상 손꼽히는 참사'로 소개되기도 하지만, 그 해석은 학계에서 논란이 큽니다.

숫자에 대하여: 숫자 논쟁이 가장 큰 항목입니다. 755년 인구 조사 5,291만 명과 764년 1,690만 명의 차이(약 3,600만 명)를 스티븐 핑커가 사망자처럼 소개했으나, 그 숫자의 출처였던 매슈 화이트는 뒤에 약 1,300만 명으로 낮췄습니다. 비엘렌스타인, 피츠제럴드 같은 학자들은 줄어든 숫자 대부분이 죽음이 아니라 호적·세금 행정이 무너진 결과라고 봅니다. 그래서 실제 사망자는 알 수 없고, 하한은 비워 두었습니다.

출처: An Lushan rebellion (Wikipedia, 인구 조사 논쟁 정리) · List of wars by death toll (Wikipedia)

11세기 1건

1096~1291년레반트·아나톨리아·이집트논쟁 있음

십자군 전쟁

100만~900만 명

1096년 제1차 십자군이 출발한 뒤 서유럽 기독교 세력과 이슬람 세력은 예루살렘과 레반트 지역을 두고 200년 가까이 싸웠습니다. 1099년 예루살렘 점령과 1187년 살라딘의 탈환, 1204년 콘스탄티노폴리스 약탈 같은 사건이 이어졌습니다. 1291년 아크레가 함락되면서 레반트의 십자군 국가는 사라졌습니다.

숫자에 대하여: 위키백과 목록에 모인 학자 추산으로 100만–900만 명입니다. 200년 가까운 기간의 전투, 포위전, 학살, 행군 중 굶주림과 질병을 모두 묶은 숫자라 범위가 매우 넓습니다. 당시 사료의 숫자가 과장된 경우가 많습니다.

출처: Crusades (Wikipedia) · List of wars by death toll (Wikipedia)

13세기 1건

1206~1368년유라시아 전역 (중국·중앙아시아·페르시아·러시아·고려 등)논쟁 있음

몽골의 정복 전쟁 (고려 침입 포함)

2,000만~6,000만 명

1206년 칭기즈 칸이 몽골 부족을 통일한 뒤 몽골군은 중국 북부, 중앙아시아, 페르시아, 러시아, 동유럽까지 정복했습니다. 고려도 1231년부터 여러 차례 침입을 받아 강화도로 도읍을 옮기며 오래 맞섰습니다. 몽골 제국은 역사상 가장 넓은 땅을 이어 지배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숫자에 대하여: 위키백과 목록에 모인 추산으로 2,000만–6,000만 명입니다. 전투·학살뿐 아니라 뒤따른 기근, 인구 조사 숫자 감소를 바탕으로 한 추산이 섞여 있어 불확실성이 큽니다. 1231년부터 약 30년 동안 이어진 고려 침입의 피해만 따로 믿을 만하게 센 숫자는 찾지 못했습니다.

출처: Mongol invasions and conquests (Wikipedia) · Mongol invasions of Korea (Wikipedia) · List of wars by death toll (Wikipedia)

14세기 2건

1337~1453년프랑스·잉글랜드

백년 전쟁

230만~350만 명

프랑스 왕위 계승을 두고 잉글랜드와 프랑스가 1337년부터 1453년까지 싸운 긴 전쟁입니다. 크레시·아쟁쿠르 같은 전투와 잔 다르크의 등장이 이 시기에 있었습니다. 전쟁은 프랑스가 잉글랜드 세력을 대부분 몰아내면서 끝났습니다.

숫자에 대하여: 위키백과 목록에 모인 추산으로 230만–350만 명입니다. 병사뿐 아니라 약탈·기근으로 죽은 민간인을 포함한 숫자입니다. 같은 시기 흑사병으로 죽은 사람과 전쟁 피해를 정확히 나누기 어렵습니다.

출처: Hundred Years' War (Wikipedia) · List of wars by death toll (Wikipedia)

1370~1405년중앙아시아·페르시아·인도 북부·아나톨리아논쟁 있음

티무르의 정복 전쟁

700만~1,700만 명

사마르칸트를 근거지로 삼은 티무르는 1370년 무렵부터 세상을 떠난 1405년까지 페르시아, 인도 북부, 시리아, 아나톨리아로 원정했습니다. 정복한 도시에서 대규모 학살을 벌였다는 기록이 여러 곳에 남아 있습니다. 1402년 앙카라 전투에서는 오스만 술탄 바예지드 1세를 사로잡았습니다.

숫자에 대하여: 위키백과 목록에 모인 추산으로 700만–1,700만 명입니다. 이스파한·델리·바그다드 등지의 학살 기록을 바탕으로 한 추산이 많아 불확실성이 큽니다.

출처: Timur (Wikipedia) · List of wars by death toll (Wikipedia)

16세기 2건

1562~1598년프랑스

프랑스 종교 전쟁 (위그노 전쟁)

200만~400만 명

프랑스의 가톨릭 세력과 개신교(위그노) 세력이 1562년부터 1598년까지 여러 차례 내전을 벌였습니다. 1572년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 학살로 파리와 지방에서 많은 위그노가 죽었습니다. 1598년 앙리 4세가 낭트 칙령을 내리면서 내전이 끝났습니다.

숫자에 대하여: 위키백과 목록에 모인 추산으로 200만–400만 명입니다. 전투·학살과 함께 전쟁에 따른 기근과 역병으로 죽은 사람을 포함합니다.

출처: French Wars of Religion (Wikipedia) · List of wars by death toll (Wikipedia)

1592~1598년한반도논쟁 있음

임진왜란·정유재란

믿을 만한 사망자 추정을 찾지 못했습니다

1592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일본군이 조선을 침략해 한양과 평양까지 올라왔습니다. 이순신의 수군과 각지의 의병, 명나라 원군이 맞서 싸웠고, 1597년 다시 쳐들어온 일본군(정유재란)은 1598년 히데요시가 죽은 뒤 물러갔습니다. 전쟁으로 조선 전역이 크게 황폐해졌고 많은 사람이 죽거나 일본으로 끌려갔습니다.

숫자에 대하여: 믿을 만한 총사망자 범위를 찾지 못해 숫자를 비워 두었습니다. 영문 위키백과는 조선의 군민 사망을 '100만 명 이상', 명군 3만 명 이상, 일본군 사상·포로·실종 10만 명 이상으로 적지만, 조선 쪽 숫자의 근거가 학술서가 아닌 대중 해설 글입니다. 일본으로 끌려간 포로는 5만–6만 명이라는 추산(턴불)이 있습니다.

출처: Imjin War (Wikipedia, 사상자 정보상자) · List of wars by death toll (Wikipedia)

17세기 3건

1618~1683년중국·만주논쟁 있음

명–청 교체기 전쟁

최대 2,500만 명(추정)

1618년 누르하치의 후금이 명나라와 전쟁을 시작한 뒤, 명나라는 이자성 등의 농민 반란까지 겹쳐 1644년 무너졌습니다. 청나라는 베이징에 들어간 뒤에도 남명 정권과 삼번, 타이완의 정씨 세력과 싸웠고 1683년에야 중국 전역을 차지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양저우 학살 같은 큰 참사가 있었습니다.

숫자에 대하여: 위키백과 목록은 약 2,500만 명으로 적습니다. 명 말기의 농민 반란, 청군의 정복 전쟁, 기근과 역병, 인구 조사 감소를 묶은 추산이라 범위의 아래쪽은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출처: Transition from Ming to Qing (Wikipedia) · List of wars by death toll (Wikipedia)

1618~1648년중부 유럽 (신성 로마 제국)

30년 전쟁

450만~800만 명

1618년 보헤미아의 개신교 귀족들이 합스부르크 황실에 맞선 일을 시작으로, 유럽 여러 나라가 독일 땅에서 30년 동안 싸웠습니다. 종교 갈등과 왕가들의 세력 다툼이 얽힌 전쟁이었습니다.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끝났습니다.

숫자에 대하여: 위키백과 목록에 모인 추산으로 450만–800만 명입니다. 전투 사망보다 굶주림과 역병, 약탈로 죽은 민간인이 훨씬 많았던 것으로 봅니다. 독일 지역 인구가 크게 줄었다는 점에는 학자들의 의견이 대체로 같지만 감소 폭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출처: Thirty Years' War (Wikipedia) · List of wars by death toll (Wikipedia)

1700~1721년북유럽·동유럽 (스웨덴·러시아·폴란드)논쟁 있음

대북방 전쟁

최대 100만 명(추정)

스웨덴과 러시아·덴마크·작센-폴란드 동맹이 발트해 패권을 두고 1700년부터 1721년까지 싸웠습니다. 1709년 폴타바 전투에서 표트르 대제의 러시아군이 스웨덴군을 크게 이겼습니다. 전쟁 뒤 러시아는 강대국으로 떠올랐고 스웨덴은 세력을 잃었습니다.

숫자에 대하여: 위키백과 목록은 약 100만 명으로 적습니다. 군인 사망과 함께 전쟁 중 퍼진 역병(1708–1712년 발트 지역 흑사병 등)의 사망이 포함되어 있어 하한은 비워 두었습니다.

출처: Great Northern War (Wikipedia) · List of wars by death toll (Wikipedia)

18세기 3건

1701~1714년서유럽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

40만~125만 명

스페인 왕 카를로스 2세가 후계자 없이 죽자 프랑스 부르봉 왕가와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가 왕위를 두고 맞섰고, 영국·네덜란드 등이 합세했습니다. 블렌하임·말플라케 같은 큰 전투가 있었습니다. 1713–1714년 위트레흐트 조약 등으로 끝났습니다.

숫자에 대하여: 위키백과 목록에 모인 추산으로 40만–125만 명입니다. 주로 군인 사망(전투·질병)을 센 숫자입니다.

출처: War of the Spanish Succession (Wikipedia) · List of wars by death toll (Wikipedia)

1756~1763년유럽·북아메리카·인도

7년 전쟁

100만~150만 명

프로이센·영국 동맹과 오스트리아·프랑스·러시아 동맹이 유럽에서 싸우는 동안, 영국과 프랑스는 북아메리카와 인도에서도 식민지를 두고 맞섰습니다. 여러 대륙에서 동시에 벌어져 '최초의 세계 전쟁'이라 불리기도 합니다. 1763년 파리 조약과 후베르투스부르크 조약으로 끝났습니다.

숫자에 대하여: 위키백과 목록에 모인 추산으로 100만–150만 명입니다. 군인과 민간인 사망을 포함합니다.

출처: Seven Years' War (Wikipedia) · List of wars by death toll (Wikipedia)

1792~1815년유럽 전역·러시아·이집트

프랑스 혁명 전쟁·나폴레옹 전쟁

400만~700만 명

프랑스 혁명 뒤 1792년부터 프랑스와 유럽 왕국들의 전쟁이 이어졌고, 나폴레옹이 권력을 잡은 뒤 전쟁은 유럽 전역으로 넓어졌습니다. 1812년 러시아 원정에서 나폴레옹 군대는 큰 손실을 입었습니다. 1815년 워털루 전투의 패배로 나폴레옹의 시대가 끝났습니다.

숫자에 대하여: 위키백과 목록에 모인 추산으로 1792–1815년 혁명 전쟁과 나폴레옹 전쟁을 합쳐 400만–700만 명입니다. 군인 사망(전투·질병)과 민간인 사망을 포함합니다.

출처: Napoleonic Wars (Wikipedia) · French Revolutionary Wars (Wikipedia) · List of wars by death toll (Wikipedia)

19세기 6건

1850~1864년중국 남부·양쯔강 유역

태평천국의 난

2,000만~7,000만 명

스스로 예수의 동생이라 주장한 홍수전이 1850년 광시에서 일으킨 태평천국 운동은 1853년 난징을 수도로 삼을 만큼 커졌습니다. 청나라 군대와 증국번의 상군 등 지방 군대가 오랜 싸움 끝에 1864년 난징을 함락시켰습니다. 19세기에 일어난 전쟁 가운데 가장 많은 사람이 죽은 전쟁으로 꼽힙니다.

숫자에 대하여: 위키백과 목록에 모인 추산으로 2,000만–7,000만 명입니다. 2,000만–3,000만 명이 가장 흔히 인용되고, 위쪽 숫자는 인구 감소 전체를 전쟁 탓으로 본 추산입니다. 전투·학살과 함께 기근과 역병으로 죽은 사람이 포함됩니다.

출처: Taiping Rebellion (Wikipedia) · List of wars by death toll (Wikipedia)

1853~1856년크림반도·흑해·발칸

크림 전쟁

61만~67만 명

러시아와 오스만 제국·영국·프랑스·사르데냐 동맹이 1853년부터 1856년까지 싸웠고, 세바스토폴 포위전이 가장 큰 싸움이었습니다. 야전 병원의 참상이 알려지면서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의 간호 활동이 주목을 받았습니다. 1856년 파리 조약으로 끝났습니다.

숫자에 대하여: 위키백과 목록에 모인 추산으로 61만–67만 명입니다. 대부분 군인이며, 전투보다 질병으로 죽은 병사가 더 많았습니다.

출처: Crimean War (Wikipedia) · List of wars by death toll (Wikipedia)

1856~1873년중국 윈난논쟁 있음

판타이 반란 (윈난 회민 봉기)

최대 100만 명(추정)

청나라 윈난성에서 회족 무슬림과 한족 사이의 충돌이 커지면서 1856년 봉기가 일어났습니다. 두원슈가 다리를 중심으로 세력을 세웠으나 1872–1873년 청군에 무너졌습니다. 태평천국과 같은 시기에 일어난 청나라 말기의 큰 내란 가운데 하나입니다.

숫자에 대하여: 위키백과 목록은 약 100만 명으로 적습니다. 전투·학살과 역병을 포함한 추산이며 근거 자료가 많지 않아 하한은 비워 두었습니다.

출처: Panthay Rebellion (Wikipedia) · List of wars by death toll (Wikipedia)

1857~1858년인도 북부논쟁 있음

1857년 인도 항쟁 (세포이 항쟁)

80만~200만 명

1857년 영국 동인도회사 군대의 인도인 병사(세포이)들이 메러트에서 봉기했고, 항쟁은 델리와 인도 북부 여러 지역으로 퍼졌습니다. 영국은 1858년까지 항쟁을 진압했습니다. 그 뒤 동인도회사의 통치가 끝나고 영국 정부가 인도를 직접 다스리게 되었습니다.

숫자에 대하여: 위키백과 목록에 모인 추산으로 80만–200만 명입니다. 진압 과정의 보복과 뒤따른 기근·역병으로 죽은 인도 민간인이 대부분이며, 숫자의 근거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습니다.

출처: Indian Rebellion of 1857 (Wikipedia) · List of wars by death toll (Wikipedia)

1861~1865년미국

미국 남북 전쟁

62만~85.1만 명

노예제와 연방 탈퇴 문제로 미국 남부 11개 주가 남부 연합을 세우면서 1861년 북부 연방과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1863년 게티즈버그 전투가 큰 고비였고, 같은 해 링컨이 노예 해방 선언을 발표했습니다. 1865년 남군이 항복하면서 전쟁이 끝났고 노예제가 폐지되었습니다.

숫자에 대하여: 군인 사망을 센 숫자입니다. 오래 쓰인 공식 추산은 약 62만 명이고, 인구학자 데이비드 해커는 2011년 인구 조사 자료를 분석해 가장 가능성 높은 값을 75만 2천 명, 위쪽을 85만 1천 명으로 내놓았습니다. 민간인 사망은 정확히 집계되지 않았습니다.

출처: J. David Hacker, A Census-Based Count of the Civil War Dead (Civil War History, 2011) · American Civil War (Wikipedia) · List of wars by death toll (Wikipedia)

1864~1870년남아메리카 (파라과이·브라질·아르헨티나·우루과이)논쟁 있음

파라과이 전쟁 (삼국 동맹 전쟁)

15만~50만 명

파라과이가 1864년 브라질, 아르헨티나와 충돌하면서 우루과이까지 가세한 삼국 동맹과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전쟁은 1870년 파라과이 대통령 솔라노 로페스가 전사하면서 끝났습니다. 파라과이는 인구와 영토를 크게 잃어, 근대에 한 나라가 입은 피해 비율로는 가장 큰 전쟁 가운데 하나로 꼽힙니다.

숫자에 대하여: 위키백과 목록에 모인 추산으로 15만–50만 명입니다. 파라과이 인구가 얼마나 줄었는지(인구의 절반 이상이라는 주장부터 그보다 훨씬 적다는 주장까지)는 학자들 사이에 논쟁이 큽니다. 군인·민간인, 굶주림과 질병 사망을 모두 포함합니다.

출처: Paraguayan War (Wikipedia) · List of wars by death toll (Wikipedia)

20세기 22건

1904~1905년만주·한반도 주변 바다

러일 전쟁

12만~16만 명

만주와 대한제국에 대한 영향력을 두고 러시아와 일본이 1904년부터 1905년까지 싸웠습니다. 뤼순 포위전과 펑톈 전투, 쓰시마 해전에서 일본이 이겼습니다. 1905년 포츠머스 조약 뒤 일본은 대한제국에 을사늑약을 강요해 외교권을 빼앗았습니다.

숫자에 대하여: 위키백과 목록에 모인 추산으로 12만–16만 명입니다. 대부분 러시아·일본 군인 사망(전투·질병)이며 만주 민간인 피해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출처: Russo-Japanese War (Wikipedia) · List of wars by death toll (Wikipedia)

1910~1920년멕시코논쟁 있음

멕시코 혁명

100만~270만 명

1910년 오랜 독재자 포르피리오 디아스에 맞선 봉기로 시작해, 마데로·우에르타·비야·사파타·카란사 등 여러 세력이 10년 가까이 싸웠습니다. 1917년 새 헌법이 만들어졌습니다. 1920년 무렵 오브레곤이 권력을 잡으면서 큰 내전은 잦아들었습니다.

숫자에 대하여: 위키백과 목록에 모인 추산으로 100만–270만 명입니다. 인구 감소에는 전쟁 사망뿐 아니라 미국으로의 이주, 출생 감소, 1918년 독감 사망이 섞여 있어 실제 전쟁 사망자는 이보다 적을 수 있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출처: Mexican Revolution (Wikipedia) · List of wars by death toll (Wikipedia)

1914~1918년유럽·중동·아프리카·태평양

제1차 세계대전

1,500만~2,200만 명

1914년 사라예보에서 오스트리아-헝가리 황태자가 암살된 뒤 유럽 열강이 두 진영으로 나뉘어 전쟁을 벌였습니다. 서부 전선의 참호전과 기관총·독가스 같은 새 무기 때문에 전례 없이 많은 병사가 죽었습니다. 1918년 11월 휴전으로 끝났고, 이 전쟁 중 오스만 제국 안의 아르메니아인 등도 대규모로 죽임을 당했습니다.

숫자에 대하여: 위키백과 목록에 모인 추산으로 1,500만–2,200만 명입니다. 군인 사망은 약 900만–1,100만 명으로 흔히 추산되며, 나머지는 민간인(학살·기근·질병 포함)입니다. 1918–1920년 스페인 독감 사망은 보통 따로 셉니다.

출처: World War I casualties (Wikipedia) · List of wars by death toll (Wikipedia)

1917~1922년옛 러시아 제국

러시아 내전

700만~1,000만 명

1917년 볼셰비키 혁명 뒤 볼셰비키의 적군과 이에 맞선 백군, 여러 민족 세력, 외국 간섭군이 옛 러시아 제국 곳곳에서 싸웠습니다. 양쪽 모두 반대 세력을 처형하는 테러를 벌였고, 전쟁 막바지에는 큰 기근이 들었습니다. 1922년 무렵 적군이 이기고 소련이 세워졌습니다.

숫자에 대하여: 위키백과 목록에 모인 추산으로 700만–1,000만 명입니다. 전투 사망보다 기근(1921–1922년 대기근 포함), 발진티푸스 같은 전염병, 적색·백색 테러로 죽은 사람이 훨씬 많습니다.

출처: Russian Civil War (Wikipedia) · List of wars by death toll (Wikipedia)

1927~1949년중국

국공 내전

400만~900만 명

중국 국민당 정부와 공산당은 1927년부터 내전을 벌였고, 중일 전쟁 동안 잠시 손을 잡았다가 1946년 다시 전면전에 들어갔습니다. 1949년 공산당이 이기고 중화인민공화국을 세웠습니다. 국민당 정부는 타이완으로 옮겨 갔습니다.

숫자에 대하여: 위키백과 목록에 모인 추산으로 1927–1949년 전체 400만–900만 명입니다. 군인·민간인 사망과 포위전 중 굶주림(창춘 포위전 등)을 포함하며, 중일 전쟁 기간과 겹치는 부분의 구분이 출처마다 다릅니다.

출처: Chinese Civil War (Wikipedia) · List of wars by death toll (Wikipedia)

1937~1945년중국

중일 전쟁

1,400만~2,200만 명

1937년 루거우차오 사건을 계기로 일본이 중국을 전면 침략했고, 같은 해 말 난징에서 대규모 학살이 벌어졌습니다. 중국은 수도를 충칭으로 옮기며 오래 버텼고, 1941년부터는 이 전쟁이 태평양 전쟁, 곧 제2차 세계대전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1945년 일본의 항복으로 끝났습니다.

숫자에 대하여: 중국 쪽 사망을 센 숫자입니다. 역사가 래나 미터는 중국의 군인 200만 명 이상, 민간인 1,200만–1,400만 명이 죽은 것으로 보고, 클로드펠터는 중국 전체 사망을 최대 2,200만 명으로 적습니다(위키백과 정리). 일본군 사망은 약 45만–70만 명으로 따로 추산됩니다. 제2차 세계대전 항목과 겹치므로 더하면 안 됩니다.

출처: Second Sino-Japanese War (Wikipedia, 사상자 정보상자) · Nanjing Massacre (Wikipedia)

1939~1945년유럽·아시아·태평양·북아프리카

제2차 세계대전

7,000만~8,500만 명

1939년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유럽에서 전쟁이 시작되었고, 1941년 독소 전쟁과 일본의 진주만 공격으로 전 세계로 번졌습니다. 나치 독일은 유대인 약 600만 명을 비롯해 많은 사람을 계획적으로 학살했습니다(홀로코스트). 1945년 5월 독일, 8월 일본이 항복하면서 끝났으며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이 죽은 전쟁입니다.

숫자에 대하여: 위키백과 목록과 「제2차 세계대전 사상자」 문서에 모인 추산으로 7,000만–8,500만 명입니다. 군인 약 2,100만–2,500만 명, 나머지는 민간인이며 홀로코스트와 전쟁 기근·질병 사망을 포함합니다. 중일 전쟁(1937–1945)의 중국 사망자도 이 안에 포함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출처: World War II casualties (Wikipedia) · List of wars by death toll (Wikipedia) · Documenting Numbers of Victims of the Holocaust and Nazi Persecution (USHMM)

1946~1954년베트남·라오스·캄보디아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

40만~84만 명

제2차 세계대전 뒤 다시 인도차이나를 지배하려던 프랑스와 호찌민이 이끈 베트민이 1946년부터 싸웠습니다. 1954년 디엔비엔푸 전투에서 프랑스군이 크게 졌습니다. 같은 해 제네바 협정으로 베트남은 북위 17도선을 경계로 나뉘었습니다.

숫자에 대하여: 위키백과 목록에 모인 추산으로 40만–84만 명입니다. 프랑스 연합군과 베트민 군인, 민간인 사망을 포함합니다.

출처: First Indochina War (Wikipedia) · List of wars by death toll (Wikipedia)

1950~1953년한반도

6·25 전쟁 (한국전쟁)

250만~350만 명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이 38선을 넘어 남침하면서 전쟁이 시작되었고, 유엔군과 중국군이 참전하면서 전선이 한반도 남북을 오갔습니다. 1951년 이후에는 휴전선 부근에서 고지전이 이어졌습니다. 1953년 7월 27일 정전 협정으로 전투는 멈췄지만, 평화 조약은 아직 맺어지지 않았습니다.

숫자에 대하여: 250만–350만 명은 위키백과 목록에 모인 군인·민간인 전체 사망 추산입니다. 국가기록원이 옮겨 실은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6·25전쟁 통계자료집』(2023)에 따르면 한국군 전사·사망 13만 8,418명, 유엔군 전사·사망 4만 803명(미군 3만 6,574명), 북한군 사망 약 52만 명(문헌에 따라 다름), 중국군 사망 14만 8,600명(한국 추정)입니다. 남한 민간인 피해는 1955년 『대한민국 통계연감』 기준 사망 24만 4,663명, 학살 12만 8,936명, 납치·행방불명 38만여 명이며, 북한 민간인 사망은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민간인 사망은 150만–300만 명으로 추산하는 학자가 많습니다.

출처: 국가기록원, 6·25전쟁 인명피해 통계 (군사편찬연구소 『6·25전쟁 통계자료집』 2023 인용) · Korean War (Wikipedia) · List of wars by death toll (Wikipedia)

1954~1962년알제리논쟁 있음

알제리 독립 전쟁

40만~160만 명

1954년 알제리 민족해방전선(FLN)이 프랑스의 식민 통치에 맞서 무장 투쟁을 시작했습니다. 프랑스군의 진압 과정과 여러 세력의 충돌로 많은 사람이 죽었고, 고문 문제가 프랑스 사회에서도 큰 논란이 되었습니다. 1962년 에비앙 협정으로 알제리가 독립했습니다.

숫자에 대하여: 위키백과 목록에 모인 추산으로 40만–160만 명입니다. 프랑스 쪽 역사가들의 추산(수십만 명)과 알제리 정부가 내세우는 숫자(150만 명 안팎) 사이의 차이가 커서 논쟁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출처: Algerian War (Wikipedia) · List of wars by death toll (Wikipedia)

1955~1975년베트남·라오스·캄보디아

베트남 전쟁

130만~420만 명

남베트남 정부와 미국 등이 북베트남과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베트콩)에 맞서 싸운 전쟁입니다. 한국군도 1964년부터 1973년까지 파병되었습니다. 1973년 미군이 철수한 뒤 1975년 사이공이 함락되면서 베트남은 북베트남 주도로 통일되었습니다.

숫자에 대하여: 위키백과 목록에 모인 추산으로 130만–420만 명입니다. 베트남 정부는 1995년 군인·민간인 합쳐 약 300만 명(민간인 약 200만 명)이 죽었다고 발표했습니다. 라오스·캄보디아에서 죽은 사람을 넣느냐에 따라 숫자가 달라집니다. 미군 사망은 약 5만 8천 명, 한국군 전사는 약 5천 명입니다.

출처: Vietnam War casualties (Wikipedia) · List of wars by death toll (Wikipedia)

1967~1970년나이지리아 남동부논쟁 있음

나이지리아 내전 (비아프라 전쟁)

50만~300만 명

1967년 나이지리아 남동부가 비아프라 공화국으로 독립을 선언하자 나이지리아 연방 정부와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연방군의 봉쇄로 비아프라 지역에 큰 기근이 들었고, 굶주린 아이들의 사진이 전 세계에 알려져 국제 구호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1970년 비아프라가 항복하면서 끝났습니다.

숫자에 대하여: 대부분 봉쇄에 따른 굶주림과 질병으로 죽은 비아프라 민간인입니다. 위키백과는 민간인 사망을 50만–300만 명으로 적고, 전투에서 죽은 군인은 4만 5천–10만 명으로 따로 적습니다. 당시 비아프라 측은 숫자를 높이고 나이지리아를 지지한 영국·미국 관리들은 낮추려 했다는 지적이 있어 범위가 넓습니다.

출처: Nigerian Civil War (Wikipedia)

1971년방글라데시 (당시 동파키스탄)논쟁 있음

방글라데시 독립 전쟁

30만~300만 명

1971년 파키스탄군이 동파키스탄(지금의 방글라데시)의 독립 운동을 무력으로 누르면서 대규모 학살이 벌어졌고, 수백만 명이 인도로 피란했습니다. 12월 인도가 참전하면서 파키스탄군이 항복했습니다. 그 결과 방글라데시가 독립국이 되었습니다.

숫자에 대하여: 위키백과 목록에 모인 추산으로 30만–300만 명입니다. 방글라데시 정부는 300만 명을 공식 숫자로 쓰지만, 학자들의 독립 추산은 이보다 훨씬 낮은 경우가 많아 논란이 큽니다. 대부분 민간인입니다.

출처: Bangladesh Liberation War (Wikipedia) · 1971 Bangladesh genocide (Wikipedia) · List of wars by death toll (Wikipedia)

1975~2002년앙골라논쟁 있음

앙골라 내전

최대 80만 명(추정)

1975년 포르투갈에서 독립한 직후 앙골라에서는 MPLA 정부와 UNITA 등이 권력을 두고 내전을 벌였습니다. 냉전 시기에는 소련·쿠바와 미국·남아프리카공화국이 각 세력을 도왔습니다. 2002년 UNITA 지도자 사빔비가 전사한 뒤 휴전이 이루어졌습니다.

숫자에 대하여: 위키백과 목록은 약 80만 명으로 적습니다. 전투·학살과 함께 전쟁에 따른 기근·질병 사망을 포함한 추산이며, 오랜 기간이라 정확한 하한 자료를 찾지 못했습니다.

출처: Angolan Civil War (Wikipedia) · List of wars by death toll (Wikipedia)

1977~1992년모잠비크

모잠비크 내전

50만~100만 명

독립 직후 모잠비크에서 FRELIMO 정부와 RENAMO 반군이 1977년부터 내전을 벌였습니다. 농촌이 크게 파괴되고 수백만 명이 집을 떠났습니다. 1992년 로마 평화 협정으로 끝났습니다.

숫자에 대하여: 위키백과 목록에 모인 추산으로 50만–100만 명입니다. 전투보다 전쟁에 따른 기근으로 죽은 민간인이 많습니다.

출처: Mozambican Civil War (Wikipedia) · List of wars by death toll (Wikipedia)

1979~1989년아프가니스탄논쟁 있음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100만~300만 명

1979년 12월 소련군이 아프가니스탄에 들어가 친소 정권을 지원하면서, 무자헤딘이라 불린 여러 저항 세력과 10년 가까이 싸웠습니다. 수백만 명의 아프간 사람들이 파키스탄과 이란으로 피란했습니다. 소련군은 1989년 2월 철수를 마쳤습니다.

숫자에 대하여: 위키백과 목록에 모인 추산으로 100만–300만 명이며, 대부분 아프가니스탄 민간인입니다. 소련군 사망은 약 1만 5천 명으로 따로 집계됩니다. 아프간 민간인 사망 추산은 출처마다 차이가 큽니다.

출처: Soviet–Afghan War (Wikipedia) · List of wars by death toll (Wikipedia)

1980~1988년이란·이라크 국경 지대

이란–이라크 전쟁

45만~70만 명

1980년 9월 이라크가 이란을 침공하면서 시작되어 8년 동안 이어진 전쟁입니다. 참호전과 인해 전술, 화학 무기 사용, 도시 미사일 공격으로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1988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598호를 받아들여 휴전했고, 국경은 거의 바뀌지 않았습니다.

숫자에 대하여: 위키백과 목록에 모인 추산으로 45만–70만 명이며 대부분 군인입니다. 더 높은 숫자(100만 명 안팎)를 드는 자료도 있습니다. 이라크군의 화학 무기 공격(할라브자 등) 피해를 포함합니다.

출처: Iran–Iraq War (Wikipedia) · List of wars by death toll (Wikipedia)

1983~2005년수단 남부 (지금의 남수단)

제2차 수단 내전

100만~200만 명

1983년 수단 정부와 남부의 수단인민해방군(SPLA) 사이에 내전이 다시 일어나 20년 넘게 이어졌습니다. 1988년 바르 엘 가잘 기근 등으로 많은 사람이 굶어 죽었습니다. 2005년 포괄적 평화 협정이 맺어졌고, 2011년 남수단이 독립했습니다.

숫자에 대하여: 위키백과 목록에 모인 추산으로 100만–200만 명이며, 대부분 전쟁에 따른 기근과 질병으로 죽은 민간인입니다.

출처: Second Sudanese Civil War (Wikipedia) · List of wars by death toll (Wikipedia)

1988년~(진행 중)소말리아논쟁 있음

소말리아 내전

35만~100만 명

1980년대 말 바레 정권에 맞선 반군 활동이 커졌고, 1991년 정권이 무너진 뒤 소말리아는 군벌들의 내전에 빠졌습니다. 1992년 대기근 때 유엔과 미군이 개입했다가 1993년 모가디슈 전투 뒤 물러났습니다. 2000년대 이후에는 정부와 알샤바브 사이의 싸움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숫자에 대하여: 위키백과 목록에 모인 추산으로 35만–100만 명입니다(시작 연도를 1981·1988·1991년 가운데 무엇으로 보느냐에 따라 다름). 1992년과 2011년 기근 사망을 포함하는 추산이 많습니다. 지금도 이어지는 분쟁입니다.

출처: Somali Civil War (Wikipedia) · List of wars by death toll (Wikipedia)

1991~2001년발칸반도 (크로아티아·보스니아·코소보 등)

유고슬라비아 전쟁 (보스니아 전쟁 포함)

13만~14만 명

1991년 유고슬라비아 연방이 무너지면서 슬로베니아·크로아티아·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코소보 등에서 잇달아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1995년 스레브레니차에서는 보스니아 무슬림 남성과 소년 약 8천 명이 살해되었고, 국제 재판소는 이를 집단 학살로 판단했습니다. 2001년 마케도니아 분쟁이 끝나면서 전쟁이 마무리되었습니다.

숫자에 대하여: 위키백과 목록에 모인 추산으로 13만–14만 명이며, 군인과 민간인을 모두 셉니다. 이 가운데 보스니아 전쟁(1992–1995)은 사라예보의 연구·기록센터가 이름 단위로 조사한 약 10만 명(『보스니아 사망자 명부』)이 가장 많이 인용됩니다.

출처: Yugoslav Wars (Wikipedia) · The Bosnian Book of the Dead (Wikipedia) · List of wars by death toll (Wikipedia)

1994년르완다

르완다 집단 학살 (르완다 내전 중)

50만~107.4만 명

1994년 4월 르완다 대통령이 탄 비행기가 격추된 뒤, 후투 강경파 세력이 투치족과 온건파 후투족을 조직적으로 살해했습니다. 이웃이 이웃을 죽이는 일이 전국에서 벌어졌고 국제 사회는 제때 막지 못했습니다. 7월 르완다애국전선(RPF)이 나라를 장악하면서 학살이 끝났습니다.

숫자에 대하여: 1994년 4월 7일부터 7월 중순까지 약 100일 동안 죽은 사람을 셉니다. 학자들의 추산은 투치족 50만–66만 2천 명이 많고(휴먼라이츠워치는 50만 7천 명), 2020년 『집단학살 연구 저널』 토론에서는 50만–60만 명이 제시되었습니다. 르완다 정부는 107만 4,017명이라는 숫자를 내놓았는데, 학자 다수는 이보다 낮게 봅니다. 함께 살해된 온건파 후투족, 트와족을 포함한 숫자도 있습니다.

출처: Rwandan genocide (Wikipedia, 사망자 추산 정리) · Human Rights Watch, Leave None to Tell the Story (1999)

1998~2003년콩고민주공화국논쟁 있음

제2차 콩고 전쟁

300만~540만 명

1998년 콩고민주공화국 정부와 르완다·우간다가 지원한 반군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고, 앙골라·짐바브웨·나미비아 등 아프리카 여러 나라가 끼어들어 '아프리카 대전'이라 불렸습니다. 2002년 평화 협정과 2003년 과도 정부 수립으로 공식적으로 끝났습니다. 그러나 동부 지역에서는 그 뒤에도 무장 세력의 충돌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숫자에 대하여: 위키백과 목록에 모인 추산으로 300만–540만 명이며, 대부분 질병·굶주림으로 죽은 '초과 사망'입니다. 540만 명은 국제구조위원회(IRC)가 2008년 발표한 1998–2007년(전쟁이 공식적으로 끝난 뒤 몇 해 포함) 추산입니다. 인간안보보고서(Human Security Report) 연구진 등은 IRC가 평상시 사망률을 낮게 잡아 숫자가 크게 부풀려졌다고 비판했습니다. 직접 폭력으로 죽은 사람은 1998–2001년 35만 명 이상으로 추산됩니다.

출처: International Rescue Committee, Mortality in the Democratic Republic of Congo: An ongoing crisis (2008) · Second Congo War (Wikipedia) · List of wars by death toll (Wikipedia)

21세기 10건

2003~2020년수단 서부 다르푸르

다르푸르 분쟁

30만~40만 명

2003년 다르푸르의 반군이 수단 정부에 맞서 봉기하자, 정부와 정부가 지원한 잔자위드 민병대가 마을들을 공격했습니다. 수백만 명이 집을 잃고 피란민이 되었습니다. 국제형사재판소는 오마르 알바시르 당시 대통령에게 체포 영장을 발부했습니다.

숫자에 대하여: 유엔은 2008년 무렵 직접 폭력과 질병·굶주림을 합쳐 약 30만 명이 죽었다고 추산했고, 위키백과 목록은 2003–2020년 전체를 약 40만 명으로 적습니다. 당시 수단 정부는 훨씬 낮은 숫자를 주장했습니다.

출처: War in Darfur (Wikipedia) · List of wars by death toll (Wikipedia)

2003~2011년이라크논쟁 있음

이라크 전쟁

27만~65.5만 명

2003년 3월 미국과 영국 등이 이라크를 침공해 사담 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렸습니다. 그 뒤 점령군에 맞선 무장 저항과 종파 간 내전이 겹쳐 많은 민간인이 죽었습니다. 미군은 2011년 말 철수했지만, 곧이어 이슬람국가(IS)와의 전쟁이 이어졌습니다.

숫자에 대하여: 추산 방법에 따라 차이가 매우 큽니다. 위키백과 목록은 2003–2017년 이라크 분쟁 전체를 27만–30만 명으로 적습니다(기록된 사망 위주). 2006년 『랜싯』 가구 조사는 2006년 6월까지 초과 사망을 약 65만 5천 명으로 추산했으나 방법을 두고 큰 논쟁이 있었습니다. 군인·민간인을 모두 포함합니다.

출처: Casualties of the Iraq War (Wikipedia) · Iraq Body Count · List of wars by death toll (Wikipedia)

2009년~(진행 중)나이지리아 북동부·차드호 주변논쟁 있음

보코 하람 무장 봉기 (나이지리아 북동부)

최대 35만 명(추정)

2009년 나이지리아 북동부에서 무장 단체 보코 하람이 정부에 맞서 봉기했습니다. 학교·교회·모스크·시장 공격과 납치가 이어졌고, 2014년 치복 여학생 납치 사건이 전 세계에 알려졌습니다. 분쟁은 니제르·차드·카메룬 등 차드호 주변으로 번졌습니다.

숫자에 대하여: 유엔개발계획(UNDP)은 2021년 6월 보고서에서 나이지리아 북동부(보르노·아다마와·요베) 분쟁으로 2020년 말까지 약 35만 명이 죽었다고 추산했습니다. 이 가운데 약 31만 4천 명은 농업·교역 붕괴에 따른 굶주림·질병 같은 간접 사망이고, 직접 폭력 사망은 약 3만 5천 명입니다. 위키백과 목록도 약 35만 명으로 적습니다. 니제르·차드·카메룬 쪽 피해는 들어 있지 않으며, 지금도 이어지는 분쟁입니다.

출처: UNDP, 1.1 million lives highly at risk in North-East Nigeria by 2030 if development deficit continues (2021-06) · Al Jazeera, Northeast Nigeria conflict killed more than 300,000 children: UN (2021-06-24) · Boko Haram insurgency (Wikipedia) · List of wars by death toll (Wikipedia)

2011~2024년시리아

시리아 내전

30.7만~61만 명

2011년 아사드 정권에 맞선 시위를 정부가 무력으로 진압하면서 내전으로 번졌습니다. 반군 세력, 이슬람국가(IS), 쿠르드 세력과 러시아·이란·미국·튀르키예 등 외국 세력이 얽혀 싸웠고, 화학 무기 공격도 있었습니다. 수백만 명이 나라 밖으로 피란했으며, 2024년 12월 아사드 정권이 무너졌습니다.

숫자에 대하여: 하한 30만 6,887명은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가 2022년 6월 발표한 2011년 3월–2021년 3월 민간인 사망 추산입니다(군인·무장대원 제외, 굶주림·의료 공백에 따른 간접 사망 제외). 위키백과 목록은 군인을 포함한 전체를 58만–61만 명으로 적으며, 이는 주로 시리아인권관측소(SOHR) 집계를 바탕으로 합니다.

출처: UN News, UN human rights office estimates more than 306,000 civilians were killed over 10 years in Syria (2022-06-28) · Syrian civil war (Wikipedia) · List of wars by death toll (Wikipedia)

2013~2020년남수단

남수단 내전

최대 38.3만 명(추정)

2011년 독립한 남수단에서 2013년 12월 키르 대통령과 마차르 전 부통령 세력 사이에 내전이 벌어졌습니다. 싸움은 딩카족과 누에르족 사이의 민족 갈등으로 번졌고 수백만 명이 집을 잃었습니다. 2018년 평화 협정이 맺어지고 2020년 통합 정부가 세워졌습니다.

숫자에 대하여: 런던 위생열대의학대학원(LSHTM) 연구진이 2018년 9월 발표한 2013년 12월–2018년 4월 '초과 사망' 추산이 약 38만 3천 명이며, 그 가운데 절반가량(약 19만 명)이 폭력에 따른 사망으로 추정되었습니다. 연구진은 숫자가 보수적이라고 밝혔습니다. 그 전에는 '최소 5만 명'이라는 숫자가 널리 쓰였습니다.

출처: Congressional Research Service, South Sudan's Civil War: Nearly 400,000 Estimated Dead (2018) · LSHTM, War in South Sudan estimated to have led to almost 400,000 excess deaths (2018) · South Sudanese Civil War (Wikipedia)

2014년~(진행 중)예멘

예멘 내전

15만~37.7만 명

2014년 후티 반군이 수도 사나를 장악하자, 2015년 사우디아라비아가 이끄는 연합군이 정부를 돕기 위해 개입했습니다. 공습과 봉쇄, 콜레라 유행, 기근이 겹쳐 유엔이 '세계 최악의 인도주의 위기' 가운데 하나로 불렀습니다. 2022년 휴전 뒤 큰 전투는 줄었지만 분쟁은 완전히 끝나지 않았습니다.

숫자에 대하여: 유엔개발계획(UNDP)은 2021년 11월 보고서에서 2021년 말까지 전쟁 관련 사망을 약 37만 7천 명으로 내다봤고, 그 가운데 약 60%를 굶주림·질병 같은 간접 사망으로 보았습니다. 하한 15만 명은 같은 보고서의 비율에서 나온 직접 전투 사망 규모(보도 기준)입니다. 2022년 이후 숫자는 포함하지 않았습니다.

출처: Al Jazeera, Yemen war deaths will reach 377,000 by end of the year: UN (2021-11-23) · UNDP, Assessing the Impact of War in Yemen: Pathways for Recovery (2021) · Yemeni civil war (2014–present) (Wikipedia)

2020~2022년에티오피아 북부 티그라이논쟁 있음

티그라이 전쟁

16.2만~60만 명

2020년 11월 에티오피아 연방 정부와 티그라이 인민해방전선(TPLF)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고, 에리트레아군과 암하라 지역 군대도 연방 쪽에서 싸웠습니다. 통신과 구호 물자가 끊긴 가운데 학살과 성폭력, 기근 피해가 보고되었습니다. 2022년 11월 남아프리카공화국 프리토리아에서 휴전 협정이 맺어졌습니다.

숫자에 대하여: 외부 접근이 막혀 정확한 숫자를 알 수 없는 전쟁입니다. 벨기에 겐트대학교 연구진(얀 니센 등)의 추산은 폭력·굶주림·의료 공백 사망을 합쳐 16만 2천–37만 8천 명으로 흔히 인용되며, 같은 연구진의 다른 발표는 최대 50만–60만 명을 제시했습니다. 아프리카연합 중재자 오바산조 전 나이지리아 대통령은 2023년 1월 약 60만 명이라고 말했고, 에티오피아 정부 쪽 숫자는 이보다 훨씬 낮습니다. 군인 사망도 포함된 추산입니다.

출처: Casualties of the Tigray war (Wikipedia) · The Globe and Mail, Tigray war has seen up to half a million dead from violence and starvation (2022) · Tigray War (Wikipedia)

2022년~(진행 중)우크라이나논쟁 있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군인 사망 수십만 명(추정 엇갈림) · 확인된 민간인 사망 1만 6,431명(2026년 6월 기준)

2014년 크림반도 병합과 돈바스 분쟁에 이어, 2022년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했습니다. 키이우 공격은 실패했지만 동부와 남부에서 참호전과 드론·미사일 공격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2026년 10월 현재 전쟁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숫자에 대하여: 진행 중이며 양국 모두 군인 사망을 제때 공개하지 않습니다.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2026년 1월 보고서에서 2022년 2월–2025년 12월 러시아군 사망을 최대 32만 5천 명, 우크라이나군 사망을 10만–14만 명으로 추산했습니다(러시아 정부는 이 연구를 믿을 수 없다고 반박). 유엔 우크라이나 인권감시단은 2026년 6월 말까지 확인된 우크라이나 민간인 사망을 1만 6,431명(어린이 803명)으로 집계했고, 러시아 점령지(마리우폴 등)의 사망은 확인하지 못해 실제는 더 많다고 밝혔습니다.

출처: AP via WSLS, A new report warns that combined war casualties in Russia's war on Ukraine could soon hit 2 million (2026-01-28, CSIS 보고서 보도) · Euronews, June was deadliest month for Ukraine civilians in over four years, UN monitors say (2026-07-15) · Casualties of the Russo-Ukrainian war (Wikipedia)

2023년~(진행 중)수단 (하르툼·다르푸르·코르도판)논쟁 있음

수단 내전 (정부군–신속지원군)

5.9만~15만 명 이상(2026년 기준, 집계마다 다름)

2023년 4월 수단 정부군(SAF)과 준군사 조직 신속지원군(RSF) 사이에 무력 충돌이 벌어져 수도 하르툼과 다르푸르로 번졌습니다. 다르푸르의 엘파시르 등에서 민간인 학살이 보고되었고, 세계에서 가장 많은 피란민이 생긴 위기로 꼽힙니다. 2026년 10월 현재 전쟁은 계속되고 있으며 드론 공격이 민간인 사망의 주된 원인이 되었다고 유엔은 밝혔습니다.

숫자에 대하여: 진행 중입니다. 분쟁 사건 집계 기관 ACLED는 2026년 4월 기준 최소 5만 9천 명이 폭력으로 죽은 것으로 기록했고(언론 보도), 구호 단체들은 실제가 훨씬 많다고 봅니다. 위키백과 목록은 약 15만 명으로 적습니다. 웁살라대·PRIO 연구진은 2026년 10월 글에서 2025년 한 해에만 직접 사망이 최대 약 10만 명일 수 있다고 추산했습니다. 굶주림·질병으로 인한 간접 사망은 이 숫자들에 대부분 들어 있지 않습니다.

출처: PRIO, Sudan's death toll in 2025 could be as high as 100,000: how we did the count (2026-10) · ACLED media citation, Officials warn Sudan conflict has been 'abandoned' as war enters fourth year (The Independent, 2026-04) · Sudanese civil war (2023–present) (Wikipedia) · List of wars by death toll (Wikipedia)

2023년~(진행 중)가자 지구·이스라엘 남부논쟁 있음

가자 전쟁 (2023년 10월 7일 이후)

7만 4,389명 이상(가자 보건부 집계, 2026년 10월 13일 기준)

2023년 10월 7일 하마스 주도 무장 세력이 이스라엘 남부를 공격해 많은 사람을 죽이고 인질을 붙잡아 갔습니다. 이스라엘은 가자 지구에 대규모 공습과 지상전을 벌였고, 가자 주민 대부분이 피란민이 되었으며 심각한 식량 위기가 보고되었습니다. 2025년 10월 휴전이 이루어졌지만 그 뒤에도 사망자가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숫자에 대하여: 숫자를 내는 쪽이 서로 다릅니다. 가자 보건부(하마스가 운영하는 행정 당국 소속) 집계를 인용한 팔레스타인 통신 WAFA는 2026년 10월 13일 기준 가자 지구 사망자를 7만 4,389명으로 보도했습니다(2025년 10월 11일 휴전 이후 사망 1,498명 포함, 전투원과 민간인을 구분하지 않음). 유엔 기관들은 이 집계를 대체로 인용하며, 이스라엘 정부는 그 신뢰성과 전투원 비율을 두고 이의를 제기합니다. 이스라엘 쪽은 2023년 10월 7일 하마스 주도 공격으로 약 1,200명이 죽었고(이스라엘 정부 집계), 그 뒤 가자 지상전에서 군인 수백 명이 전사했습니다. 무너진 건물 아래 실종자와 간접 사망이 더 있다는 연구가 있어 상한은 비워 두었습니다.

출처: Bernama-WAFA, Death toll from the aggression on Gaza rises to 74,389 fatalities (2026-10-13) · Casualties of the Gaza war (Wikipedia) · October 7 attacks (Wikipedia)

성경은 무엇이라 말하는가

이에 다른 붉은 말이 나오더라 그 탄 자가 허락을 받아 땅에서 화평을 제하여 버리며 서로 죽이게 하고 또 큰 칼을 받았더라

요한계시록 6:4

요한계시록의 붉은 말은 땅에서 화평이 걷히는 장면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전쟁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가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들의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들의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리라

이사야 2:4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마태복음 5:9

난리 소문 앞에서 그리스도인은 두려워하지 않되 무심하지도 않습니다. 전쟁 속에 있는 이웃을 위해 기도하고, 할 수 있는 자리에서 화평을 이루는 사람이 되라고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자료에 대하여

함께 보기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요한계시록 2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