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는 말씀이 무슨 뜻인가요?", "노아의 때와 롯의 때는 어떤 때였나요?" 예수님은 재림을 말씀하시며 노아의 홍수 이야기를 꺼내셨습니다. 그래서 "노아의 때와 같이"는 마지막 때를 이야기할 때 가장 많이 인용되는 구절 가운데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 글에서는 이 비유가 실제로 무엇을 말하는지 본문 그대로 읽고, 자주 덧붙는 해석들을 차분히 살펴보겠습니다.
본문이 말하는 것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마태복음 24:37-39
예수님이 노아의 때에서 꼽으신 모습은 뜻밖에도 평범합니다.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는 일입니다. 이것들 자체는 죄가 아닙니다. 문제는 그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였으니"라는 데 있습니다. 홍수가 오기까지 일상에 파묻혀 하나님의 경고를 듣지 못했던 것입니다.
누가복음은 여기에 롯의 때를 더합니다.
또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 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하늘로부터 불과 유황이 비오듯 하여 그들을 멸망시켰느니라 인자가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
누가복음 17:28-30
사고팔고, 심고, 집을 짓는 일상도 똑같이 이어지다가 심판이 갑자기 옵니다. 두 비유가 함께 말하는 것은 재림이 사람들이 예상하지 못한 평범한 날에 갑자기 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은 이 비유 뒤에 곧바로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24:42)를 놓았습니다.
창세기가 말하는 노아의 때
창세기는 홍수 전 세상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창세기 6:5
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부패하여 포악함이 땅에 가득한지라"(창세기 6:11)고 합니다. 일상의 무관심 아래에는 마음의 악함과 포악함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같은 장은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6:8)고 말하고, 노아가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6:22)고 기록합니다.
신약이 기억하는 노아
- 히브리서 11:7: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했습니다.
- 베드로후서 2:5: 노아는 "의를 전파하는" 사람이었습니다.
- 베드로전서 3:20: 하나님은 방주를 준비하는 동안 "오래 참고 기다리"셨습니다.
노아의 때는 심판의 때이기 전에 하나님이 오래 참으신 때였고, 노아가 경고를 믿고 묵묵히 준비한 때였습니다.
어떻게 읽어 왔나: 신학 노트
"노아의 때와 같이"를 두고 크게 두 갈래의 읽기가 있습니다.
- 도덕적 상태로 읽는 견해: 마지막 때가 노아의 때처럼 죄악과 포악함이 가득한 때가 된다고 봅니다. 창세기 6:5, 6:11과 디모데후서 3:1-5를 함께 읽습니다.
- 갑작스러움과 무관심으로 읽는 견해: 예수님이 직접 꼽으신 것은 먹고 마시는 일상과 "깨닫지 못함"이므로, 비유의 핵심은 재림이 준비되지 않은 사람들에게 갑자기 온다는 데 있다고 봅니다.
두 읽기는 서로 맞서지 않습니다. 다만 본문이 강조하는 쪽은 분명히 두 번째입니다. 한편 창세기 6:1-4의 "하나님의 아들들"과 "네피림"을 두고는, 타락한 천사로 보는 견해, 셋의 경건한 후손으로 보는 견해, 고대의 권력자들로 보는 견해가 오래전부터 나뉘어 왔습니다. 이 구절을 근거로 "마지막 때에 유전자 조작이나 외계 존재가 나타난다"고 말하는 주장도 있지만, 예수님은 노아의 때를 말씀하시며 네피림을 언급하지 않으셨습니다.
이 연재의 자리: 이 연재는 노아의 때 비유를 재림의 갑작스러움과 깨어 있음에 대한 말씀으로 읽습니다. 대환난 뒤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 그날은 준비된 이들에게는 구원의 날이고 깨닫지 못한 이들에게는 갑작스러운 심판의 날이 됩니다.
흔한 오해 바로잡기
- "요즘 결혼과 잔치가 많은 것이 노아의 때의 징조다." 예수님은 결혼과 식사를 죄로 꼽지 않으셨습니다. 문제는 일상 속에서 하나님을 잊는 것입니다.
- "노아의 홍수 같은 대홍수가 다시 온다." 하나님은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창세기 9:11)고 무지개로 약속하셨습니다. 비유의 요점은 홍수의 재현이 아니라 심판의 갑작스러움입니다.
- "노아의 때를 알면 재림 날짜를 알 수 있다." 이 비유는 바로 그 날을 "알지 못함"을 말하는 비유입니다(마태복음 24:42).
오늘의 적용
노아의 때 비유는 우리의 평범한 하루를 돌아보게 합니다. 먹고 일하고 집을 돌보는 일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지 묻습니다. 노아는 비 한 방울 보이지 않을 때 방주를 지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방주는 말씀에 순종하는 작은 일들입니다. 가족과 함께 드리는 짧은 기도, 미루어 둔 화해, 이웃에게 건네는 복음의 말이 그것입니다. 그리고 그 방주의 문을 닫으신 분이 하나님이셨던 것처럼(창세기 7:16), 우리의 구원도 끝까지 하나님이 지키십니다.
함께 보기
자료와 출처
- 성경 본문: 개역개정 (마태복음 24:37-42, 누가복음 17:26-30, 창세기 6:1-22, 7:16, 9:11, 히브리서 11:7, 베드로후서 2:5, 베드로전서 3:20, 디모데후서 3:1-5)
성경 본문은 개역개정이며 구절마다 원문과 대조했습니다.
머리 사진: 2004년 인도양 해일 뒤 반다아체 주변 항공 사진. 패트릭 M. 보너피드, 미국 해군, 퍼블릭 도메인. 위키미디어 공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