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하늘과 새 땅 성경구절은 어디인가요?", "새 하늘과 새 땅은 천국과 같은 곳인가요?" 마지막 때 이야기는 흔히 전쟁과 심판에서 멈추지만, 성경의 마지막 장면은 심판이 아니라 새 창조입니다. 이 글에서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말하는 본문을 그대로 읽고, 그곳이 어떤 곳이며 지금의 세상과 어떤 관계인지 정리하겠습니다.
본문이 말하는 것
1. 이사야가 처음 들려준 약속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너희는 내가 창조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영원히 기뻐하며 즐거워할지니라 보라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운 성으로 창조하며 그 백성을 기쁨으로 삼고
이사야 65:17-18
"새 하늘과 새 땅"이라는 표현은 이사야 65:17과 66:22에서 처음 나옵니다. 하나님은 "창조하나니"라는 동사를 쓰십니다. 처음 창조를 하신 분이 마지막에 다시 창조하신다는 뜻입니다.
2. 베드로가 바라본 의의 나라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베드로후서 3:13
베드로는 새 하늘과 새 땅을 "의가 있는 곳"이라고 부릅니다. 그곳의 가장 큰 특징은 화려함이 아니라 의로움입니다.
3. 요한이 본 마지막 장면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요한계시록 21:1-2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요한계시록 21:4
요한계시록 21~22장이 그리는 새 하늘과 새 땅의 모습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하나님이 사람과 함께 사십니다.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21:3). 성 안에 성전이 따로 없는 것은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21:22).
- 눈물, 사망, 애통, 아픔이 없습니다.(21:4)
- 저주가 없습니다. "다시 저주가 없으며"(22:3). 창세기 3장의 저주가 완전히 풀립니다.
- 생명나무와 생명수의 강이 있습니다. 에덴에서 막혔던 생명나무가 다시 열리고, 그 잎사귀는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습니다(22:1-2).
- 하나님의 얼굴을 봅니다.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22:4).
어떻게 읽어 왔나: 신학 노트
지금의 세상은 없어지는가, 새로워지는가
- 새롭게 됨으로 보는 견해: 하나님이 지금의 창조 세계를 버리시지 않고 깨끗하게 하시고 새롭게 하신다고 봅니다.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요한계시록 21:5), 그리고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영광의 자유에 이른다는 말씀(로마서 8:21)을 근거로 듭니다. 예수님도 "세상이 새롭게 되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태복음 19:28).
- 완전히 새로 지음으로 보는 견해: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요한계시록 21:1),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베드로후서 3:10)라는 표현을 들어, 지금의 세상이 끝나고 전혀 새로운 세상이 창조된다고 봅니다.
두 견해 모두 지금의 죄와 저주와 죽음이 완전히 사라진다는 데에는 동의합니다. 차이는 그 새로움이 옛 창조와 어떤 연속성을 가지느냐입니다. 베드로후서 3장도 노아 때의 세상이 "물이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3:6) 땅 자체가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는 점에서, 불의 심판 역시 정화와 새롭게 함으로 읽는 해석자가 많습니다.
이 연재의 자리: 이 연재는 역사적 전천년설의 순서에 따라, 새 하늘과 새 땅을 그리스도의 재림, 천년왕국, 곡과 마곡의 싸움, 백보좌 심판이 모두 지난 뒤에 오는 마지막 완성으로 봅니다. 천년왕국이 이 땅에서 그리스도의 다스림을 보여 주는 단계라면, 새 하늘과 새 땅은 하나님이 만물을 영원히 새롭게 하시는 마지막 단계입니다.
흔한 오해 바로잡기
- "천국은 구름 위에서 하프를 켜는 곳이다." 성경의 마지막 그림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과 새 땅입니다. 몸의 부활을 입은 성도가 하나님을 섬기며 "세세토록 왕 노릇" 하는 곳입니다(22:3-5).
- "이 땅은 어차피 불탈 것이니 아무 상관없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창조 세계를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셨고, 마지막에 그것을 새롭게 하십니다. 피조물을 함부로 대할 이유가 되지 않습니다.
- "새 예루살렘은 어떤 단체의 본부다." 새 예루살렘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성입니다. 땅의 어느 단체나 건물을 새 예루살렘이라 부르는 주장은 본문과 맞지 않습니다.
오늘의 적용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고린도후서 4:18). 새 하늘과 새 땅의 약속은 오늘의 눈물을 가볍게 여기라는 말이 아니라, 그 눈물을 닦아 주실 분이 계신다는 약속입니다. 몸이 아프고 마음이 무너지는 날, 요한계시록 21:4을 소리 내어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답게, 오늘 우는 이웃 곁에 머물러 주는 것으로 새 창조의 맛을 먼저 나누시기 바랍니다.
함께 보기
자료와 출처
- 성경 본문: 개역개정 (이사야 65:17-18, 66:22, 베드로후서 3:6-13, 요한계시록 21:1-5, 21:22, 22:1-5, 로마서 8:21, 마태복음 19:28, 고린도후서 4:18)
성경 본문은 개역개정이며 구절마다 원문과 대조했습니다.
머리 사진: 구름 사이로 내리는 빛줄기. 그랜트 W. 구지, 미국 해양대기청(NOAA), 퍼블릭 도메인. 위키미디어 공용